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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삶

추운 겨울에 특히 사무치게 생각나는 산 / 태백산 등반 / 일출 산행 /

by 유플라시보 2024.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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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갑자기 추워지는 날이면 꼭 생각나는 산이 있다.
태백산!!!!!!
약 3년 전 그때도 그랬지.. 그 태백산에 올라 일출을 마주하고 싶었다. 살을 에이는 그 추운 날씨에 왜 태백산에 갑자기 오르고 싶었는지...
바알갛게 뜨는 해를 태백산 정상에서, 반드시 태백산 정상에서 마주해야만 한다고 계시라도 받았던 것인지...
 
남편은 나의 계획에 선뜻 찬성했지만 자기는 다음 기회(추위를 엄청 타는 남편님을 백번 이해했다.)에 같이 가겠다고 했었지..
 
결국 나는 그 날카로운 추위에 태백산을 다녀왔었고 그 느낌을 글로 긁적여 놓았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하!!! 또다시 가고 싶다. 아직도 그 산오름의 떨림이 살아나는 듯하다.
어떤 방해꾼(^^)도 없이 그 특별한 해를 마주하고 왔을 때 나는 얼마나 들떠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또 다시 그 눈길을 슬며 걸어가고 싶다.
 
아래는 그 당시 적어놓은 글이다.


 
 
  태백산(1,567m, 국립공원,강원도 태백시, 경북 봉화군 석포면)  
  
   • 등 산 일 : 2022. 1. 8(토)
   • 산행코스 : 유일사 주차장-유일사 쉼터-장군봉-천제단-유일사 주차장
   • 산행거리 : 8.58km
   • 소요시간 : 3시간 55분
   • 평균속도 : 2.19km/hr

새벽 2시 반에 알람을 설정해 놓았지만 눈은 1시 40분에 떠졌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다가 알람 울리기 직전에 일어나서 혹시나 남편과 아이가 깰까봐 문도 조용히 여닫고 불도 최소한으로 켜고 조용조용 먹을거리를 준비했다. (둘다 조용히 잘 자더군.ㅋㅋ)
3시 15분경 집 출발. 찻길에는 봉화 큰길 접어들 때까지 차량을 한대도 볼 수 없었다. 그 정적에 라디오를 켜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몰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너 참 대단하다. 태백산 일출이 뭐길래 너를 이렇게 부지런하게 만들은 거니?!’

그 일출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 일출은 뭔가 대단한 영험한 기운이 느껴질거 같았다. 왜냐구? 태백산이니까.
일출을 마주하며 대화하고 싶었다.  아니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까지 여기까지 살아온 나를.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다고 약속도 하고 싶었다.

태백산 정상에서의 일출시각이 7시38분이므로 시간은 넉넉했다. 거의 도착할 무렵 하품이 나면서 졸음이 오기 시작했는데 유일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미 산행을 위해서 도착한 차들이 버스,봉고,자가용을 포함해 20여대 정도 있었다.


5시경에 출발을 예정한 산객들이 차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시동을 켜두고 있었다. 15분 정도 잠을 청한 뒤 바나나 하나와 커피 한잔으로 간단 식사를 마친 후 배낭을 메고 화장실에서 비움행위를 하고 5시 10분경 본격 산행에 나섰다. 2시간 가량 오르면 천제단에 도착할 수 있으므로 일출을 30분 가량 앞두고 있는 시간이었다.

(눈을 밟으며 산 정상을 향하고 있는 앞팀들)


초입부터 벌써 많은 산객들이 렌턴을 켜고 오르고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의 등산행렬을 보면서 이들도 새벽에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쳤겠지? 어떤 희망과 염원을 안고 이 새벽에 산을 오를까 궁금했다.

꾸준히 오르막이 계속되었는데 전혀 힘들지 않은 이유는 가끔씩 산을 타기도 했지만 랜턴 불빛이 비치는 곳만 집중하면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신경을 쓰다보니 오르막에 대한 감각도 무뎌진듯 해서였을 것이다.

다른 팀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1시간 정도 오르니 매서운 바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정상에 오르면 체감온도가 영하 25도 정도 된다고 하여 이제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던 핫팩도 뜯어서 주머니에 넣고 타이즈는 2개나 껴입고 장갑도 2켤례를 장착, 모자도 2개로 완전 무장을 하였으나 스산한 바람소리를 들으니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이젠이 눈 속에 박히면서 뽀드득 뽀드득 소리는 냈는데 그소리를 들으니 어릴 때 눈밭을 밟으며 놀던 때가 잠시 떠올랐다. 내 기억으로는 30센티 이상 눈이 왔었던 거 같은데 눈밭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보기도 하고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하고 막내삼촌과 집앞에 이글루를 만들어서 사촌 동생이랑 세명이서 그안에 들어가 놀기도 했던 기억들....
그리고 대학교때 설악산에 올랐는데 버너와 코펠은 가져왔으나  물을 챙기는 걸 잊어버리고 와서 정상에 쌓인 눈을 뭉쳐 끓여서 커피를 타마셨던 일들…

(앞에 먼저 가던 사람들이 여명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계셨다.)


이런 기억들을 소환해서 뭉게뭉게 생각의 고리를 엮어가고 있는데 뒤에 오던 한분이 그 팀원들에게 ‘왼쪽을 보세요, 여명이 보이네요’ 한다. 나도 덩달아 왼쪽을 보았는데. 와~~~ 칠흙같은 어둠을 여는, 일출을 준비하는 여명이 지평선을 따라 빨갛고 노랗게 한줄로 열병식을 하고 있었다. 산에서 저렇게 아름다운 여명을 본 게 언제였던가?

(여명의 아름다움.. 한참 동안 마주할 가치가 충분했다)


첫째 아들이 대안학교 방학때 함께 오른 지리산에서 마주했던 여명이 기억났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정상을 향해 걸어가다가 잠시 쉬던 곳에서 마주했던 여명, 그때의 아들의 얼굴빛도, 그 장소도 또렷이 기억 났다.

(장군봉에서 인증샷을 찍고 계신 분들)


정상을 오를때까지 여명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면서 내 왼쪽을 계속 따라왔다.  정상인 장군봉에 올랐을 땐 발갛고 긴 띠가 더 두껍게 만들어져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옆에서는 장군봉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냥 그시간 그여명을 마주하고 오래오래 있고 싶어서 장군단에 등을 맞대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냥 거기서 일출을 마주할까 하다가 아직 시간이 넉넉하므로 5분만 더 걸어가면 나오는 천제단에서 일출을 만나기로 하고 천제단을 올랐는데 사진으로 봤을 땐 천제단 주위가 보통 봉오리처럼 면적이 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수백명은 족히 서있을 수 있는 공간이여서 놀라웠다. 거기다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겹겹이 산봉오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태백산 천제단)

10분 정도 있다 보니, 발가락과 손가락이 시려와서 천제단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미 만석, 다시 나와서 천제단 바깥에서 바람을 등지고 돌벽에 기대어 서서 일출을 맞이했다.
해가 머리을 빼꼼히 내미는 순간 일출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태백산에서 마주한 일출은 이제까지 본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해에 금박을 입힌 듯, 아니면 오늘은 조도를 한껏 올린듯, 너무도 눈부시게 올라오고 있었다.. 눈을 감아야 했을 터였으나 그 순간에는 너무도 황홀해서 눈을 감고 싶지 않았다. 그 모습을 얼른 카메라에 담고(손가락이 얼어 터질거 같아 많은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핫팩으로 언 손가락을 녹이고 다시 사진을 찍고 녹이고를 반복해 가며 장관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으로는 절대 그 감동이 전달안된다 1)
(사진으로는 절대 그 감동이 전달 안된다 2)


지평선을 다 올라온 해의 발간 기운이 내 얼굴에 반사되어 환해짐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감사의 마음이 살아나면서 나와 가족의 평온함과 안녕을 기원했다.
새벽 일찍 움직여 산에 올랐고 정상에서 마주한 거대한 자연 앞에 숨을 쉴 수 있고, 눈을 통해 이 장엄함을 관찰할 수 있는거만 해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

(천제단 안에서 고사를 지내고 계신분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많이 내려가고 한참을 그자리에서 일출과 마주하다 꽁꽁 언 손과 발을 느낄 때쯤 하산길을 향해 발을 떼었다.
(이때쯤 되니 휴대폰도 추위를 못 견디고 배터리가 50% 상태에서 바로 꺼져버리는 사고 발생~~) 

그 어느 산행때보다 벅찬 가슴을 안은 채~~~~


사진 화질이 좋진 않지만 그때의 그 감동과 벅참 그리고 다짐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다음에는 지리산을 함께 올랐던 첫째 아들과 꼭 그곳을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태백산이 영험한 산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꼭 다녀 와봐야 효과를 알 수 있다. 으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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