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는 딱 100세에 돌아가셨는데요.
할아버지가 매일 아침 일어나시면 냉수마찰에, 손으로 얼굴과 귀를 손바닥으로 비비면서 셀프마사지하셨고
일기쓰기, 식사는 소식, 담배는 30대에 끊으시고 술은 가끔 반주로 소주 반잔 정도만 드셨어요
85세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실 정도로 체력과 건강이 정말 좋으셨죠.
(자녀들이 이제 그만 타셔야 할 거 같아요. 하셨을 때 마지못해 자전거에서 내려오시긴 하셨지만요.)
할아버지는 건강관리도 잘 하셨지만 책도 많이 읽으신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마을분들이 설날에 할아버지께 일년 신수를 물으러 오시면 늘 좋은 얘기만 하셨는데
왜 늘상 좋은 얘기만 하시냐 여쭤보니 '사람은 자기가 들은 바를 믿는 경향이 있으니 나쁜 거를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냐'하셨던 기억이 있네요
친지들과 손주들한테도 존경의 대상이 되셨던 건강하셨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모두들 얼마나 놀랬겠어요.
그중 특히 많이 슬퍼하셨던 분은 작은 고모의 남편 즉 할아버지의 둘째 사위셨는데요.
이분 또한 정도 많으시고 장인어른인 할아버지께 스스럼없이 잘 대하시고
자주 찾아뵈어서 그런지 슬픔의 강도가 더 깊었던 거 같아요.
평소에 위트가 있으셔서 주위 사람들을 방긋 웃게 하는 능력을 보유한 분이셔서
나를 비롯해 고모부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바로 이 고모부 덕분(^^)에 아직까지도 장례식장만 가면
그때 일이 생각나 웃음이 피식 나올때가 많은데요
슬픔이 그득해야 할 그날. 몰래 배꼽잡으며 웃었던 그때로 돌아가 볼께요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많이 몰려들면서, 둘째날엔 상주인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그리고 고모부님들이 점차 피곤한 모습을 보이더라구요.
제가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 가끔씩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보러 들어가서
할아버지와 지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적시곤 했는데..
그때 (오늘의 주인공인) 둘째 고모부께서 손짓으로 나를 부르시더니
"OO아, 이 박카스 병 가지고 나가서 여기에 소주 좀 담아오겠니?"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 고모부가 많이 힘드신 모양이구나. 술 힘으로라도 빌려서 슬픔을 달래시려나 보네' 생각하며
후딱 박카스를 소주로 둔갑시킨 후 영정 앞에 주욱 앉아 계신분들 중 작은 고모부님 뒤에 살짜기 놓고 나왔죠
얼마 안지나 또 나를 부르시더니 한번 더 채워 오라고 두번째 싸인을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에도 미션완료했죠..그리고 세번 네번..
밖에서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나르고 있는데
그런데 갑자기 안에서 곡소리가 점점 커지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말이예요.
보통 상주들이 하는 그런 곡소리 아시죠?!!
한 분이 선창하니 다른 분들도 후창하면서 슬픔을 가중시키더군요.
그래서 밖에서 서빙하던 손주들도 콧끝 시큰해지며 슬픔에 동조했죠.
퇴근시간이 되자 조문객들의 긴 줄이 이어졌어요.
덩달아 우리들도 바빠졌는데...
바로 그때
천둥 번개라도 치는 듯한 엄청난 큰 소리가 안에서 터져 나왔어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고고고~아이고고고고~ 아이고~아이고~아이고고고고~아이고고고고~"
이 엄청난 톤의 리드미컬한 소리는 슬픈 듯 하기는 하나
상주가 하기에는 재미난 리듬에. 너무도 크고, 너무도 압도적이고, 너무도 관심이 집중되는 소리였어요
서빙하는 우리들끼리 눈이 마주치며 '아 저소리는 작은 고모부 목소리다'
소주 기운이 온몸을 휘감아 감정을 컨트롤 하기 힘든 지경에 와 있었나봐요
자동적으로 나는 이를 꽉 깨물고 볼을 씰룩거리며 웃기 시작했고 눈이 마주친 사촌들도 웃기 시작했어요.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피니 줄서있던 조문객들도 고개를 돌리면서 하나둘씩 웃기 시작하는게 보이더라구요.
웃지 않는 사람은 딱 한사람!!
바로 장남이셨던 저의 아버지만이 이사태를 어찌해야 하나 하는 표정으로 서 계셨는데
그 모습에 우리는 또 한번 웃음을 참을 수 없었어요.
업친데 겹친격으로 작은 고모부는
콧물 눈물까지 흘리시며 저 리드미컬한 곡소리를 내고 계셨어요.
콧물 눈물만 보면 엄청 슬픈데, 그 엄청난 파워풀하면서 리드리컬한 '아이고고고고~' 곡소리는 정말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어요.
이 상황은 조문객들의 줄이 완전히 줄어들기까지 거의 2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갑자기 조용해져서 들어가보니 영정이 있는 방 안쪽에 쉬는 공간에
작은 고모부님이 대자로 누워 계셨어요.
술기운+장시간의 곡소리 창가+피곤함이 겹쳐졌겠죠
그런 작은 고모부를 보는데 갑자기 또 이상하게도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너무도 좋으셨던 할아버지와
또한 너무도 좋으신 작은 고모부가 만들어낸 그날............,
정말 울다가, 웃다가, 울게 되었던 웃픈 할아버지 장례식날 이야기였습니다.
할아버지~~ 지금 제 글 보고 계시죠~~
저의 할아버지가 되어 주셨어서 지금도 감사함 간직하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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